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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생활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관광 -1)센소지(浅草寺)의 유래(由来)

by 버추얼도쿄 2011. 11. 5.






도쿄의 관광명소(東京の観光名所)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에 대해서 살펴보기

아래 글은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홈페이지의 글을 나름대로 번역한 것.
번역 전문가가가 아니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의 기원 유래(由来)
 
 때는 아스카(飛鳥)시대, 스이코 천황 36년(628) 3월18일의 이른 아침, 히노쿠마노 하마나리(檜前浜成)와 다케나리(竹成)2 형제가 에도우라( 江戸浦)지금의 스미다가와(隅田川)에 고기잡이 하던중에 뜻밖에도 1신(一躰)의 관음님(観音さま)의 존상(尊像)을 감득(感得) 했다.
 고시(鄕司) 하지노나카토모 (はじのなかとも :이름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음)가 이것을 받들고, 성관세음보살님인 것을 알아 깊이 귀의(帰依) 하고, 그 후 출가하고, 자택을 절로 개축하여 예배(礼拝) 공양(供養)에 생애(生涯)를 바쳤다.
 다이카(大化) 원년(645),지덕을 갖춘 승려(勝海上人)가 이 땅에 오시고, 관음당(觀音堂)를 건립하고, 몽고(夢告)꿈의 계시에 의해 본존을(本尊) 비불(秘仏)로 정해져, 이래 오늘까지 이 전법(伝法)의 규정(규칙)은 엄수되고 있다.
 광막한 무사시노(武藏野)의 한 획, 동경만(東京灣)의 이리에(入江)의 일개 어촌에 지나지 않은 아사쿠사(淺草)는 참배의 신도가 더함에 따라 발전하고, 헤이안(平安) 초기에는, 자각 대사 (慈覚大師) 엔닌(円仁) 님(794∼864, 센소지 중흥 개산·히에이잔(比叡山) 천대 주지 3세)이 래산(来山) 하여, 너립의 본존이 조각되었다.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장군의 독실한 귀의를 받은 센소지(浅草寺)는, 점차로 게고샤(外護者외호자)로서 역사상 유명한 무장(武将)들의 신앙(信仰)도 모으고, 가람(伽藍)의 장엄(荘厳)은 더욱 더 늘었다.
  에도(江戶) 시대의 처음, 토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공에 의해 막부(幕府)의 기원소가 정해지고 나서는, 당탑(堂塔)의 위용이 더욱 좋아져, 소위 에도(江戶) 문화의 중심으로서 크게 번영한 것이다.
 이리하여 도쿄 도내 최고(東京都内最古)의 사원인 센소지(浅草寺)는, 「아사쿠사 관음」(淺草観音)의 명칭으로 전국적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친숙 해지어 년간 약3000만명이나 되는 참배자가 방문하는 민중신앙의 중심지(民衆信仰の中心地)가 되어 있다.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관세음보살(観世音菩薩

 자비의 부처님(慈悲の仏さま) 센소지(浅草寺) 본존(本尊)의 관세음보살님(観世音菩薩さま)은, 많은 부처님 중에서도 가장 자비로운 부처님이며, 사람들의 괴로움을 보면 그 괴로움을 제외하고, 바램을 들으시면 즐거움을 주십니다.
 특히 센소지 본존(浅草寺)의 관음님(観音さま)의 이익(利益) 영험(霊験)은 고금 무쌍(古今無双)해서, 시현(示現)부터 오늘까지 1400년 가까이에 걸쳐 헤아릴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을 구해주고 가호(加護)하셔 왔습니다.
 관음님(観音さま)의 신앙(信仰)은, 관음님(観音さま)에게 「자비」의 마음을 받고 사는 것, 다시 말해 모두에 「따뜻한 마음」으로 접해서 하루를 사는것 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
※ 참배(参拝)할 때는 합장(合掌)해서 「남무관세음보살」「南無観世音菩薩」이라고 외칩시다.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평소에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다 많이 놀라곤 한답니다.
이전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백제가 멸망했을때 왕족을 비롯한 귀족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대다수 운좋은 사람들은 모두 일본으로 망명했다고 하지요.
아주 오래전 부터 백제 사람들이 일본에 이주해 뿌리를 내렸다는 설이 지배적 이더라고요.

백제의 왕인박사가 일본에 전해준 것 기억 하시껬지요.
천자문과 논어 였지요.
천자문이 뭐인가요.
말 그대로 가장 기초가 되는 한자 아니던가요.
그럼 그때까지 일본에 글이 없었다는 것이 확실한데,,,
글도 없는 국가에서 왕인 박사가 오기 훨씬 전의 일은 무슨 수로 기록 했단 말인가요.
각설하고,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나카미세(仲見世)

아사쿠사 센소지의 역사를 인터넷 뒤적이며 보다가,
어떤 일본인이 쓴 일본 글을 읽는 중 한국에서 인용했다더군요.
어디서 인용했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정 호승 시인.
허?~~참!!
재미 있어서 , 나혼자 보기 아까워서,,
정호승 시인님 허락 없이 죄송합니다.
싫으시다면 삭제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