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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생활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관광 -2)센소지(浅草寺) 카미나리몬(雷門)

by 버추얼도쿄 2011. 11. 6.






도쿄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카미나리몬(雷門)

이번에는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로 들어가는 커다란 문
카미나리몬(雷門)에 대에서 살펴보기로.
카미나리몬(雷門)의 정식명은 풍뢰신문(후우라이신몬 風雷神門).

카미나리몬(雷門)

 텐교오(天慶) 5년(942)타이라노 킨마사(平公雅)에 의해 창건되어, 그 처음에는 코마가타(駒形) 부근에 있었다.
 가마쿠라(鎌倉) 시대 이후 현재의 이 곳에 이축되었을 때, 바람신·뇌신이 처음으로 봉안되었다고 말하여진다.
 당초는, 가람수호를 위해서, 풍수해 또는 화재로 부터의 피난을 목적으로 해서 이 두 신(二神)이 모셔진 것으로, 일종의 호법선신 (護法善神)으로 봐야하 것이었지만 그위에, 풍우순시(風雨順時)의 천하 태평, 오곡풍요의 기원(祈願)도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현재의 문은, 게이오(慶應) 원년(1865) 12월12일의 다하라초(田原町)의 큰 불로 불탄 문을  쇼와(昭和)35년(1960), 95년만에 마쓰시타전기(松下電器) 창시자 마쯔시타 코노스케(松下幸之助)씨의 기부에 의해, 부흥 재건되어, 센소지의 총문(浅草寺の総門)으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또, 아사쿠사(淺草)의 얼굴로서도 전국적으로 유명.


카미나리몬(雷門)의 뇌신(雷神)과 풍신(風神)

왼쪽 뇌신상(雷神像) 과 오늘쪽 풍신상(風神像 )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카미나리몬(雷門)의 왼쪽에는 뇌신상(雷神像) 오른쪽에는 풍신상(風神像 )이 모셔져 있다.
게이오(慶應)의 큰 불에 의해 머리 부분만 남고 소실 되었었다.
 메이지(明治)7년(1874)시오가와(塩川蓮玉) 렌교쿠씨에 의해 보조각 기장 2.3m  쇼와(昭和)35년(1960)모리 다이조(大造)·하기와라 마사하루(萩原雅春)씨에 의해 보수 채색되었다.
풍신 (風神)은 바람을 담당하고 뇌신 (雷神)은 천둥(벼락)을 담당하는 신이며 센소지의 호법선신(護法善神)이다.
 원래 가미나리몬(雷門)은 이 두 신(二神)의 이름으로부터 「풍뢰신문(風雷神門 )」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가미나리몬(雷門)이라고만 불리게 되었다.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카미나리몬(雷門)안쪽 카미나리몬 왼쪽에 천룔상(天龍像)

카미나리몬(雷門) 안쪽 천룡상(天龍像) 과 금용상(金龍像)

쇼와(昭和)53년(1978) 3월 마쓰시타(松下) 그룹 유지에 의해 기부
 덴류(天龍) 높이 2.93m·무게 250kg (남성의 모습)
돈용높이 2.74m·무게 200kg (여성의 모습)
덴류(天龍)는 히라쿠시(平櫛) 다나카(田中)씨, 돈용은 스가와라 야스오(菅原安男)씨에 의해 조각, きそ‐ひのき【木曾檜- 노송나무조형.
이 양쪽상은, 물을 담당하는 용신님이며, 센소지(浅草寺)의 호법선신(護法善神)이다.
 카미나리몬(雷門)의 배면 즉 문을 들어가면 안쪽에
 바람신(風神)·뇌신(雷神)과 대칭이 되게 봉안되고 있다. 

센소지 안에서 본 카미나리몬 (雷門)  금용상(金龍像)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 에는 연간 3,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온다합니다.
엄청나지요.
아사쿠사 센소지(浅草浅草寺)는 절인데,,
한국에도 큰 절이 있지 않은가요.
참으로 부럽기만 하네요.
또 봐요.